요즘 무기력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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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때 직업 검사? 같은 느낌으로 하는 검사를 보면 항상 분석력과 자아성찰에 대해 높은 점수가 나오곤 했다. 그리고 대학생 때는 학교의 심리센터? 같은 데 가서 거기 선생님과 친해질 정도로 많이 검사를 받기도 했다. 뭐랄까.. 자신을 좀 더 제대로? 아니 수치상으로?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뭐 실제로 그렇게 하면서 알아낸 것들도 많다. 타임 어택형의 상황에는 제실력을 거의 발휘 못한다던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기 때문에 신중하다던가 그런 것들 말이다.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항상 서론을 어떻게 가져가야할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 항상 내용은 뭘 써야겠다고 번뜩 떠오른대로 정하지만 정작 도입부, 즉 서론을 생각하다가 흐지부지해지고, 그러다보면 시간이 지나고 결국 글은 커녕 떠오른 생각도 일상에 잊혀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글을 써보기로 했다. 내 스스로도 무슨 심경의 변화일까 싶긴 하지만, 지난 금요일 퇴근길에서 있었던 일과 현재 상황을 좀 글로 풀어서 정리좀 해보고 싶은 마음에 간단하게 써보려고 한다.

요즘 회사에서 굉장히 무기력하게 지내고 있다. 티는 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이렇게 글로 쓰려고 한 시점에서 가까운 사람들은 어느정도 눈치채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하다. 처음에는 이 무기력이 프로젝트가 끝나고, 주어진 일이 없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많아지면서 오는 무기력이라 생각했다. (이전 프로젝트가 그렇게 번할 정도의 프로젝트는 아니었기 때문에 번아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론 이런 상황에 대해서 주위와 얘기도 해봤다. 좋은거라면서 부러워 하는 사람도 있었고, 심심하면 공부나 하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공부를 했다. 하지만, 나는 일하면서 이런 저런 퍼포먼스를 생각하면서 동기를 얻는 스타일인데, 그냥 공부만 하려니 동기부여가 잘 되질 않았다. 게다가 뭔가 다들 일하는데, 책 펴놓고 책 본다는게 뭔가 눈치보이기도 하고 좀 그랬다.

그렇게 2-3 주 정도 지났을까. 회사에서 나간 사람의 공백으로 인한 프로젝트를 인원이 없어서 내가 맡게 되었다. 책 보다가 기술 블로그 들락날락 거리다가 업무가 주어지니 이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뭐… 희망적인 결론이었다면 내가 이 글을 쓸리가 없겠지.

프로그래머는 깨끗하고 우아한 코드를 좋아한다. 나 또한 그런 코드를 좋아하고 (남들 눈에는 어떻게 보일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작성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내가 맞닥드린 코드는 굉장히 읽기 힘든 코드였다. 자기 자신만 알아볼 수 있을 법한 코드에 길이도 길다. 안다. 레거시 코드가 깔끔하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라는 걸, 하지만 뭐랄까 그런 코드를 작성했던 사람의 직급이 과장이라는 적어도 7년 이상은 코딩을 한 사람이었고, 그런 코드를 내가 개선을 해야 한다는 상황은 짜증을 넘어 화가 났다. 게다가 상황 또한 마음에 안 들었다. 일단 첫 미팅은 했다. 했고 어떤 컨텐츠가 나올지도 알았다. 하지만? 그건 표면이고, 내부는 어떻게 할 것인지? 그런 구체성에 대해선 제대로 잡혀있는 게 없다. 그냥 내가 기존 소스 파악하고 API 만들어서 걍 문서 주면 되는건지, 내가 전부 맡아서 진행하면 되는건지 그런 R&R이 제대로 안 잡혀있다보니 그런 우야무야한 상태로 시간이 흘렀고, 열정이 생기기보단 무기력해지더라.

어떻게 생각해보면 이런 상황은 꽤 오래전부터 징조가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최근에 이직을 했지만, 꽤 친하다고 생각한 동료가 있었다. 같이 기술에 대한 얘기도 하고, 회사에 대한 얘기도 하면서 나름 심심하진 않게 지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젠 그렇게 얘기할 사람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심심해질 수가 있고, 내가 주위 사람에 영향을 많이 받는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이런 상황을 조금이라도 타개해보려고, 이력서를 잠깐 보고 구직사이트를 둘러보왔다. 그리고 크게 2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지원동기, 물론 큰 물에서 놀고 싶은 마음도 있고 한 편으로는 스타트업에서 재밌게 일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건 희망사항이고, 근본적인 문제는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안 들어서 인데, 이런 부분은 어딜가나 필연적으로 다시 생기기 마련이다. 옮기려는 동기가 너무 빈약하고, (상대쪽에서 보기엔) 위험하다. 두 번째는 이력, 남들과는 비교하지 말라곤 하지만, 이 항목을 쓰려고 생각하다보면 비교하게 되는 게 현실인 거 같다. 그리고 비교란 게 항상 본인 기준 상위랑 비교하게 되기 마련이라. 이리저리 생각하다보면 내가 특별하게 한 게 없어보인다. 그냥 그 정도는 남들도 다 한 거 같고 말이다.

최근에 본 스토브 리그 라는 드라마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너한테 선발을 맡길 것도 아니니 너무 부담갖지 말라고, 겨우 2년차니 많이 보고 배워라 잘하려는 부담감이 커서 제대로 못 던지는 신인 선수에게 한 말로 이런 뉘앙스였다. 나도 어떻게 보면 아직 (곧 4년차를 바라보고 있는 3년차) 코린이이다. 앞으로 배울 날이 더 많은데, 너무 잘해야 한다는 부담은 좀 덜어버리는 게 어떨까 생각해본다.

아무래도 단상이다보니 생각나는대로 주절주절 써서 두서도 없고, 슬슬 잘 시간도 되고 해서 글을 이만 줄일까 한다. 일상 얘기는 안 쓸까 했는데, 쓰고보니 뭐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쓸 기회가 되면 또 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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